로크미디어 번역서는 믿고 거른다

고영성은 <일취월장><완벽한 공부법>에서의 뻔뻔한 표절 행각이 드러나면서 더이상 본인 이름으로 책을 내지는 못하고, 해외 판권을 사들여와 번역서를 내는데 치중하고 있다.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같은 유사과학 잡서를 들여올 정도로 옥석을 가려내는 안목이 없지만, 2주에 한 권씩 마구 찍어내다보니 간혹 좋은 책이 걸리기도 한다.

fig1.png

단, 이 경우에도 원서가 좋다는 얘기지 번역서가 좋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로크미디어 출판사를 거치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로크미디어의 각종 서브 브랜드

로크미디어의 각종 서브 브랜드

<유러피언>이 바로 그런 책이다.

fig3.jpg

번역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846년 6월 13일 화창한 일요일 아침 7시 30분, 최초의 증기 기관차는 브뤼셀로 가는 최초의 개통 운행을 하기 위해 파리의 생라자르역에서 천천히 빠져나갔다.

최초가 아닌 개통 운행도 있나? 게다가 최초의 증기 기관차는 1846년보다 훨씬 앞섰는데… 뭔가 수상해서 원서를 찾아봤다.

The first steam engine pulled out of the Gare Saint-Lazare on its pioneering journey to Brussels at 7.30 in the morning, on a sunny Saturday, 13 June 1846.

Saturday인데 일요일이라니?

두 문장 뒤에서는 ‘the Chemins de Fer du Nord’를 ‘남부철도회사’로 번역해놨다. 아무리 불어를 모른다고 해도 ‘Nord’라고 하면 적어도 남쪽이라는 느낌은 안 들텐데…

또, ‘official dignitaries’를 ‘공식 저명인사’로 번역해놨다. 그럼 비공식 저명인사도 있나? 여기서 official은 ‘공식적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공무원’을 가리킨다. 따라서 ‘고관대작’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술잔이 사람들에게 돌려지자 큰 혼란이 벌어졌고,

There were scenes of chaos when the drinks ran out,

‘drinks ran out’을 어떻게 술잔을 돌리는 것으로 번역할까? 고등학생도 ‘술이 떨어지자’라는 뜻임을 알텐데…

너무 충격적이라 몇 페이지를 더 살펴봤다.

새벽 2시에 경호 열차의 호송을 받는 고위직 인사들은 브뤼셀행 여행을 계속했다.

At two o'clock in the morning, the convoy of revellers continued on their journey to Brussels.

웬 고위직 인사? ‘취객들을 실은 열차’ 정도로 번역해야겠다.

그들은 순간적인 열광을 격렬하게 폭발시키며 반응해 왔고, 그것은 비아르도를 기쁘게 했다.

It displayed a spontaneous enthusiasm which delighted Viardot.

‘자발적인 열정을 보여주었고’ 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을 너무 오바했다.

흥행주는 극장 소유주들로부터 선급금을 받고, 또 특별석의 티켓 판매로 수익을 올린다. 하지만 극장은 연간 사용료를 받고서 개인 박스석을 임대하여 수입을 올린다.

The impresario would receive an advance from the owners and would take the profits from the sale of tickets in the stalls, while the theatre earned its income from leasing private boxes for an annual fee.

'while'을 '하지만'으로 번역하니 영 어색하다. '한편'이나 '그리고' 정도로 번역하는 게 좋겠다.

유년기에 가족이 자주 이동하고 또 아버지의 가혹한 훈련이 더해져서, 그녀는 어릴 때부터 강인한 인내심과 성공의 의지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성격 덕분에 그녀는 언어에도 재능을 발휘했다.

The constant movement of her early years, combined with the rigour of her father's teaching, imbued in her a steely stoicism and determination to succeed. It also made her talented at languages.

'It'은 'the constant movement'를 받는다. '그런 성격 덕분에'가 아니라 ‘유년기의 잦은 이주 덕분에’라고 번역해야 한다.

6회 공연의 회당 출연료로 6천 프랑

6,000 francs for her six performances

원문에는 없는 '회당'이라는 단어가 임의로 삽입됐다.

오빠 마누엘은 2년 전 프랑스 알제리 탐험대에 들어가

Her brother Manuel had enrolled in the French expedition to Algeria two years earlier.

‘탐험대’가 아니라 ‘원정군’ 또는 ‘원정대’로 써야 한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탐험한 게 아니라 침공한 거니까.

좀 더 시끌벅적한 관객이 출입하는 파리 오페라 극장의 살 르펠레티에와는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as opposed to the more stately public of the Opera's Salle Le Peletier.

'stately'는 '위엄 있는'이라는 뜻으로 '시끌벅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가르시아는 그동안 재정적으로 계속 지원해왔던 모랄레스와 그들 사이에서 난 어린 두 딸을 버리고, 호아퀴나와 함께 파리로 갔다.

Abandoning Morales and their two smaller daughters, whom he continued to support financially, Garcia left for Paris with Joaquina.

재정 지원을 끊고 파리로 떠난 것처럼 번역해놨는데, 그게 아니라 파리로 떠난 뒤에도 재정 지원을 계속 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대가의 연주회'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유럽 전역의 순회 여행을 떠나 높은 수익을 올렸다.

It was a type of virtuoso playing that set him on a highly profitable course of concert tours across Europe.

이쯤 되면 번역 오류로 봐주기도 어렵다. '대가의 연주회'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는 얘기가 도대체 원문 어디에 나오나? 기교파 연주 스타일 덕분에 성공을 거뒀다는 뜻이다.

처음 스무 페이지 정도만 대충 훑어본 것이 이 정도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봐도 이런 오류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령 486쪽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1867년에 이르러 카페 콘서트는 프랑스 법령에 따라 극장 시설을 모방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극장이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1864년 이후에 카페 콘서트에 적용되던 시행령은 완화되었고, 그리하여 극장, 보드빌, 혹은 뮤직홀과 비슷하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원문은 이렇다.

Until 1867, cafe-concerts were forbidden by French law to imitate theatres. But from 1864, when theatres were released from state control, the rules for cafe-concerts were liberalized, allowing them to become more like theatres, vaudevilles or music halls.

1867년까지 금지되었다는 것을 1867년에 이르러서야 금지된 것으로 (즉, until을 in으로) 번역해 놓으니 말이 안되는 것이다.

번역 수준은 잘 알겠고, 편집 수준은 어떨까?

  • 74p: “스페인 정보의” —> 정부의

  • 77p: “단일 사업체로 운명하면” —> 운영하면

  • 91p: “당분한” —> 당분간

  • 121p: “3천 명의 면허가 있는 책 행상이 3천 명이 있었고” —> 면허가 있는 책 행상이 3천 명이 있었고

  • 133p: “은행가과” —> 은행가와

  • 175p: 사람 이름이 베롱 —> 페롱 —> 베롱으로 한 페이지 내에서도 왔다갔다

  • 237p: “벨린스키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 벨린스키에게

  • 315p: “있있는” —> 있는

  • 493p: “그러나 공연의 스타는 폴린의 어린 세 딸이었다. 15세의 클로디는 요정의 여왕 역을 맡았고, 마리안(13세)은 요정 대장, 폴(10세)은 크라카미치의 하인 프렐림핀핀 역을 맡았다.” —> 폴은 아들인데 ‘세 딸’이라니? 원문에는 ‘three daughters’가 아니라 ‘three children’이라고 나온다.

  • 588p: “생손 요리” —> 생선

  • 626p: “마치 ‘유목민’이라는 되는 양” —> ‘유목민’이라도

  • 762p: “가치를 타고” —> 기차를

이 밖에도 오탈자는 수없이 많다.

편집자가 원서 대조는커녕 초교도 보지 않고 출판해 버린 것이 분명하다.

증거는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는 페이지 번호가 골뱅이(@@@)로 나온다. 번역가는 책으로 나올 때 정확히 몇 페이지가 될 지 몰라 @@@페이지라고 임시로 표시해둔 것인데, 그걸 고치지 않고 그대로 인쇄한 것이다. 한 군데가 아니라 무려 세 군데에서 골뱅이가 등장하고, 아래 사진에 찍힌 책은 무려 15쇄다.

로크미디어, &lt;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gt;의 처참한 편집 완성도. 로크미디어에 과연 편집 과정이라는 게 존재하긴 할까?

로크미디어,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의 처참한 편집 완성도.
로크미디어에 과연 편집 과정이라는 게 존재하긴 할까?

로크미디어의 번역서는 믿고 거르는 게 답이다.

고영성 왈, “해외 명저가 번역 하나로 쓰레기 책이 된다”

고영성 왈, “해외 명저가 번역 하나로 쓰레기 책이 된다”


Previous
Previous

폭군 번역 폭망했군

Next
Next

신영준의 지난 1년 활약상